집을 나가 생활비도 안 주는 배우자 — 악의의 유기는 언제 이혼 사유가 되나
배우자가 짐을 싸서 나간 뒤 몇 달째 연락이 없고, 아이 학원비와 대출 이자는 혼자 감당하고 있다면 이것도 이혼 사유가 되는지 궁금해집니다. 반대로 견디다 못해 내가 먼저 집을 나왔는데 "가출했으니 네가 유책"이라는 말을 듣고 불안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래는 민법이 정한 "악의의 유기"가 어떤 경우에 인정되는지에 대한 일반 정보입니다. 실제 판단은 집을 나간 경위와 그 뒤의 행동 등 개별 사정에 따라 달라집니다.
악의의 유기란
민법 제826조 제1항은 부부가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해야 한다고 정합니다. 악의의 유기는 정당한 이유 없이 이 의무를 저버리고 상대방을 내버려 두는 것을 말하며, 민법 제840조 제2호의 재판상 이혼 사유입니다.
여기서 "악의"는 단순히 알고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부부 공동생활을 그만두려는 의사로 가정을 버렸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떨어져 산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왜 나갔는지, 나간 뒤 가정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가 함께 판단됩니다.
유기로 인정되기 쉬운 모습
아무 설명 없이 집을 나가 연락을 끊은 경우, 상대방이나 자녀를 집에서 내쫓고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경우, 충분한 수입이 있는데도 생활비를 오랫동안 전혀 주지 않은 경우, 다른 사람과 살기 위해 집을 나간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같은 집에 살더라도 생활비를 완전히 끊고 가족을 돌보지 않는 상태가 이어졌다면 유기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생활비를 일부라도 계속 보내고 자녀와 연락을 유지했다면 유기로 보기 어려운 방향으로 고려될 수 있습니다.
유기로 보기 어려운 경우
부부가 합의해서 별거하는 경우, 직장이나 학업, 질병 치료처럼 사정이 있어 떨어져 사는 경우는 원칙적으로 악의의 유기가 아닙니다. 부부싸움 끝에 며칠 친정이나 본가에 가 있었던 정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자의 폭력이나 심한 폭언을 피하려고 집을 나온 경우에도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때는 오히려 집을 나오게 만든 쪽의 행위가 이혼 사유로 문제됩니다.
내가 집을 나왔다면 남겨 둘 것
집을 나온 이유가 있다면 그 사정을 보여 주는 자료를 남겨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폭력이나 폭언이 있었다면 신고·상담·진료 기록, 나오기 직전의 메시지가 근거가 됩니다.
나온 뒤에도 생활비나 양육비를 보내고, 자녀와 연락하고, 배우자와 필요한 연락을 이어 간 기록이 있으면 가정을 버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아이를 두고 나온 경우에는 양육자 지정에서 어떤 점이 고려되는지도 함께 확인해 두세요.
청구 기간과 다른 사유와의 관계
부정행위(제1호)나 제6호 사유처럼 민법이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을 따로 정해 둔 조문과 달리, 제2호 악의의 유기에는 별도의 청구 기간 규정이 없습니다. 다만 유기가 끝나고 다시 함께 살게 됐다면 그 뒤에 이 사유를 내세우기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배우자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 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면 제5호 "3년 이상 생사불명"이 문제되고, 소재를 알 수 없을 때는 공시송달로 소송을 진행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유기와 함께 폭언이나 경제적 통제가 있었다면 제3호나 제6호가 함께 주장되기도 합니다.
생활비는 이혼과 별개로 청구할 수 있다
이혼 여부를 정하기 전이라도, 배우자가 생활비를 주지 않으면 가정법원에 부양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이라면 사전처분으로 임시 생활비나 양육비를 정해 달라고 신청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악의의 유기가 인정되면 유기한 쪽이 파탄의 책임을 지게 되어 위자료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재산분할은 책임과 관계없이 혼인 중 함께 모은 재산을 나누는 절차라서, 유기한 배우자도 재산분할 청구 자체는 할 수 있다는 점은 알아 두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배우자가 집을 나간 지 얼마나 지나야 악의의 유기가 되나요?
법에 정해진 기간은 없습니다. 나간 경위, 연락과 생활비 지급 여부, 돌아올 의사가 있었는지 등을 종합해 판단하므로, 기간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Q. 생활비를 안 주는 것만으로도 이혼 사유가 되나요?
수입이 있는데도 오랫동안 생활비를 전혀 주지 않고 가족을 돌보지 않았다면 악의의 유기나 제6호 사유로 다투어 볼 수 있습니다. 일시적인 어려움으로 줄어든 정도라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제가 먼저 집을 나왔는데 유책배우자가 되나요?
집을 나온 것 자체로 곧바로 유책이 되지는 않습니다. 폭력을 피하려 했다는 등 정당한 이유가 있었는지, 나온 뒤 생활비와 자녀를 챙겼는지가 중요하게 고려됩니다.
Q. 연락이 끊긴 배우자에게도 소송을 낼 수 있나요?
주소를 알 수 없다면 법원의 공시송달 절차로 소송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생존 여부까지 확인되지 않는 상태가 3년 이상이면 생사불명을 이유로 한 이혼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